통합 검색
통합 검색

태사묘(太師廟)는
안동시 북문동 24-1번지 1229평(坪) 대지에
삼태사(三太師) : 김선평(김선평:성주), 권행(權幸:本新羅宗姓金), 장정필(張貞弼:初名 吉 ) 공(公)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천여년이 넘도록 향사(享祀)를 봉행(奉行)해온 태사묘우(太師廟宇)를 비롯해
보물각(寶物閣)과 숭보당(崇報堂), 동·서재(東·西齋), 경모루(景慕樓), 전사청(典祀廳), 차전각(車戰閣), 안묘당(安廟堂), 주사(廚舍)등 10동(棟)의
건물이 기념물(記念物) 제15호로 지정되고,
고려때 유물(遺物) 11종 21점이
보물(寶物) 제451호로 지정되어
지방문화재(地方文化財)로서 안동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적(遺蹟)이다.
[보물각 태사묘 삼공신유물(寶物閣 太師廟 三功臣遺物)]
.jpg)
신라말 귀족의 왕위 쟁탈로 왕권(王權)이 약화되자 9세기에 이르러 후백제의 견훤(甄萱)과 고려의 왕건(王建)은 신라의 영토를 쟁취(爭取)하기 시작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삼공신(三功臣)에게 병산대첩(甁山大捷)의 공(功)으로 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의 직위를 제수(除授)하고 이어 태사(太師)에 오르게 하였다.
고려시대는 삼태사(三太師)의 위패를 부(府)의
삼공신묘(三功臣廟)에 모시다가
조선중종(中宗)때부터
이곳 태사묘우(太師廟宇)에 모셔왔다.
.jpg)
고려성종(成宗)(983년)때 부민(府民)들이
정성을 모아 부(府)내에 사당(祠堂:三功臣廟宇)을 지은 것이 태사묘(太師廟)의 시작이며,
조선11대 중종(中宗)(1542)때 강릉인 김광철(金光轍)부사(府使)가 삼공신묘우(三功臣廟宇)를
현 위치로 옮기고 15대 광해군(光海君) (1613년)때 권반(權盼), 권태일(權泰一)이 삼성(三姓)의 후손들과 함께 성금(誠金)을 모아(이때 14개군 참여)
현재규모(現在規模) 중건(重建)하고
태사묘(太師廟)로 개칭하였다.